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활동한 무장이며 다이묘였다. 그의 이야기는 어릴 때 '하시바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총애를 받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 1560년(에이로쿠 3년) ~ 1600 11월 6일(게이초 5년 음력 10월 1일)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시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 성을 '도요토미'로 바꾸기 전의 이름.
그는 일본의 전국통일 이후 전역에서 태합검지를 수행하여 공헌하기도 했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에 조선으로 건너가 군감의 역할도 맡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장들과 대립하여 정권의 분열을 조장하기도 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립하며 서군의 다이묘들을 규합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과 대적하게 된다.
하지만 아군의 배신으로 패한 끝에 체포되어 처형된다.
*태합검지(太閤檢地) - 158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에서 농민을 지배하고 조세를 확보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
이시다 미쓰나리는 '오미 지역'의 '토호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어릴 때 오미 지역은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에 속해 있었다. 그 뒤 노부나가는 휘하의 장수였던 하시바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오미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렇게 그 둘은 만나게 되는데, 이시다 미쓰나리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다고 한다.
단, 세 잔의 차로 인해 하시바 히데요시의 눈에 띄어 측근이 되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시다 미쓰나리, 세 잔의 차
「무장감상기(武將感狀記)」에는 이시다 미쓰나리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첫 만남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어느 날, 매사냥을 나갔다. 그러던 중 절에 들러 심부름을 하던 어린아이에게 차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 어린아이가 바로 이시다 미쓰나리였다. 그는 어릴 때, 간온지(看音寺)라는 절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큰 잔에 미지근한 차를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가져다주었다. 갈증이 심했던 히데요시는 한 잔을 더 부탁했다.
그러자 처음에 줬던 차보다 작은 잔에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어서 또 한 잔을 부탁했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아주 작은 잔에 뜨거운 차를 가져다주었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아이가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고, 이렇게 준 까닭을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첫 잔은 목이 마른 상태에서 마시기 편한 물을 많이 원했을 것이기에 그리했습니다."
"이후에는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 차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양을 줄이고, 조금 뜨거운 물에 차를 우렸습니다."
"마지막에는 이미 차를 두 잔이나 마셔 충분히 목을 축였을 것이라 생각되어 온전히 차의 향을 음미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잔에 뜨거운 물로 우렸습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의 마음 씀씀이에 매료된 하시바 히데요시는 절의 주지에게 청원하여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단 세잔의 차로 출셋길에 오른 것이었다.
이 일화를 보면 사람은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면 기회를 잡기 위해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만약 이시다 미쓰나리가 아무 생각 없이 심부름만 했다면 그의 인생은 거기에서 멈췄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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