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8일, 전두환 대통령은 공식 수행원 22명, 비공식 수행원 등과 함께 동남아 5개국의 공식 순방길을 출발했다. 버마(미얀마)는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순방길의 첫 방문지였다.
10월 9일, 버마(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부총리 서석준을 비롯한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들은 행사 준비 및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전두환 대통령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한다.
이런 설도 있는데, 당시 미얀마를 방문하는 외국 국빈은 의전 절차상 미얀마가 자랑하는 '쉐다곤 파고다'를 참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불교도가 아닌 전두환 대통령이 난색을 표함에 따라 양국의 두 외무장관은 한국의 예를 들어 국립묘지로 스케줄을 변경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변경된 일정과 장소가 어떻게 누설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이미 대통령 수행원들은 현장에 준비를 마치고 있었는데, 10시가 되어도 의전을 담당한 미얀마의 외무장관이 도착하지 않았다. 당시 미얀마 대사였던 이계철을 먼저 현장에 가보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이계철이 묘지에 도착했고, 원거리에서 보던 테러범의 눈에는 이계철의 외모가 전두환 대통령과 비슷한 대머리인지라 오인했다고 한다.
게다가 경호단도 차량 경호를 시작했고, 의전팀도 이계철을 전두환 대통령으로 착각해 진혼곡을 울렸다. 테러범이 확신하고 폭탄 스위치를 누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장관급 5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계철 대사,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심상우 민정당 총재비서실장,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등.. 민·관의 희생자가 21명(버마인 4명 포함)이나 발생했다.
부상자는 46명(버마인 32명 포함)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폭탄 테러)은 1983년 10월 7일 북한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김진수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 3명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 담당 참사관의 집에 은거 후,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에 아웅산 국립묘지에 잠입해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했다.
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북한 공작원들은 군의 추격을 따돌려 양곤강으로 향했다. 양곤강에서 대기 중인 고속정을 타고 북한 화물선에 숨어 북한으로 귀환하는 것이 탈출계획이었으나, 고속정은 없었다.
그들은 북한 화물선까지 이동을 했지만 화물선마저 없었다. 역시 북한이다. 통수였다..
김진수는 양곤강을 헤엄치고 있었는데, 이상하다고 판단한 주민들이 신고해 체포된다. 김진수는 현장에서 수류탄을 꺼냈고, 안전핀을 뽑자마자 폭발해 한쪽 눈 실명에 한쪽 팔이 잘린 채 체포되었다.
신기철과 강민철은 양곤강에서 2명의 어부에게 부탁해 돈을 주고 배를 탔다. 어부들 중 한 명이 복통을 호소해 배에서 내렸고, 그 어부가 경찰에 신고했다. 양곤강 건너편에 기다리고 있던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신문 도중 신기철과 강민철은 가방에 권총을 꺼내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고, 신기철은 사망하고 강민철은 도주했으나 체포된다. 강민철은 수류탄에서 안전핀을 뽑았는데 바로 폭발해 한쪽 팔이 잘린 채 체포되었다.
수류탄도 북한 당국의 통수였다. 공격용이 아닌 안전핀을 뽑자마자 바로 폭발하도록 개조한 자살용 수류탄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안전핀을 뽑아서..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성향이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묘역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에 대해 격노해 북한과 국교를 즉시 단절함과 동시에 대사관을 강제로 철수시키고 국가승인까지 취소한다.
사건 당일 전두환 대통령은 모든 순방 계획을 취소하고 특별기편으로 귀국한다.
폭탄 테러로 의해 사망한 시신들은 수습되었고, 현장에서 희생된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은 합동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폭탄 테러)으로 미얀마를 포함한 사모아 등의 국가들은 북한과의 수교를 단절한다.
이로 인해 비동맹국 회의에서 북한의 발언권이 약화된다.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가을 축제를 모두 취소하거나 연기했고, KBS, MBC 등의 방송국은 쇼 및 오락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방송 일정을 취소하고 보도프로그램을 방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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