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우량계

 

조선 시대에는 비가 얼마나 왔는지 강수량을 측정할 수 있는 '측우기'라는 기구가 있었다.

 

조선은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농사를 장려했다. 이러한 국가 정책에 힘입어 농업 기술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농업의 과학화를 이룰 수 있는 많은 기구들이 발명되었다.

 

때문에 농업 생산량은 늘어났고, 농민들의 삶은 전보다 넉넉해졌다.

 

측우기는 유럽의 최초 우량계보다 200년이나 앞섰다. 1441년에 측우기를 만들어 빗물의 양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우량계라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측우기(測雨器)가 조선 세종대에 발명돼 강우량 측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전 국민이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측우기 발명자가 장영실이 아닌, 세종의 장남인 문종이라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측우기 만든사람

 

세종 23년(1441년) 4월 29일, 기록에 의하면 '황우의 변에 대해 승정원에 전지하다'라는 제목의 글 중 '구리 그릇'이라는 부분이 있다.

 

황우의 변은 소나무가 많이 있는 곳 주변의 기와집 골에 노란 소나무 꽃가루가 모이게 되는데, 그 꽃가루가 빗물과 함께 쓸려내려가면 노란색 물이 된다. 그 당시 그 현상을 보고, 황우가 내렸다고,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이 황우를 해결하는 도중에 문종이 세자 시절에 측우기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년 이래로 세자(문종)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다. 그러나 정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고인 푼수를 실험했다"

 

그 당시에는 비가 오면 땅을 파서 젖은 흙의 깊이를 재는 방식으로 강우량을 측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흙의 성분이나 주변 지형의 영향 때문에 정확한 측정이 어려웠다.

 

 

 

 

그래서 문종은 그릇을 만들어 강우량 측정을 푼수 즉 1푼 단위로 실험했다.

 

1푼은 현대 단위로 3mm 정도 된다고 한다.

 

그렇게 문종의 연구는 계속되었고, 4개월이 지나 호조(戶曺)는 측우기 설치를 왕에게 건의한다. 구리 측우기의 규정을 정하고, 현(縣) 단위까지 구체적 측정장소를 지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를 세종이 받아들여 세계 최초로 전국적 강우량 관측망이 구성됐다.

 

그럼 장영실은 왜 나왔을까?

 

장영실이 제작 과정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장영실이 발명했다는 것을 증명할 당대 문헌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150여 년 뒤, 만들어진 아산 장 씨 족보를 제외하면 이를 입증할만한 근거가 없다고 한다.

 

 

 

측우기 문종

 

528년 전, 만들어진 측우기는 현대의 우량계만큼 정확하게 강수량을 잴 수 있다고 한다.

 

측우대는 측우기를 받치는 역할을 하는 가장 아래 부분에 있는 것인데, 측우대는 50~70cm 높이의 석대로 만들어졌다. 이 측우대에 측우기 즉, 빗물을 받는 그릇을 꽂는 것이다.

 

측우대를 파내서 측우대를 꽂기 때문에 기온에 따른 측정 오차가 덜 일어난다.

 

맨땅에다가 측우기를 그냥 설치하면 한여름에는 온도가 올라가 직경이 넓어지고, 밤에는 온도가 떨어지면서 직경이 좁아진다. 이런 걸 방지한 것이다.

 

또한 측우기를 50~70cm 높이의 측우대에 꽂으면 바닥에 떨어진 빗물이 튀어 측우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한다. 보다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측우기는 3단 합체형 몸통으로 증발의 영향을 줄여준다고 한다. 또한 측우기를 3개로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보관이나 운반에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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