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KBS2 드라마 '황진이'

황진이는 조선시대 중종과 명종 시기를 살았던 기생으로, '명월(明月)'은 황진이의 기생 이름이며, '진랑'이라고도 불렸다.

 

기생이라고 하지만 황진이는 시인, 서예가, 작가, 사상가, 화가, 무용가이기도 했으며, 성리학적 지식도 해박하여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기기도 하였다. 

 

황진이는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3절'이라고 불리며, <만월대 회고시>, <박연폭포시>등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똑똑한 황진이는 출중한 외모로도 유명했다.

 

당시 최고의 기생인 황진이를 거절한 서경덕은 누구일까?

 

 


 

황진이

 

이미지 출처 - KBS2 드라마 '황진이'

황진이는 개성에서 양반의 서녀로 태어났으며, 정확한 출생년도는 알려지지 않는다고 한다.(1506년 전후로 추정) 아버지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기생 또는 천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종모법'에 따라 천민의 신분으로 살았다.

 

어머니가 홀로 황진이를 키웠지만 여느 양반집 딸 못지않게 학문과 예의를 배웠으며, 여덟 살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 살에는 한문 고전을 읽고, 한시를 지을 정도로 학문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서화와 가야금에도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황진이는 왜 기생이 되었을까?

 

아쉽게도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지만 어머니가 기녀 출신이었다는 설, 서녀 출신임을 비관하였다는 설, 짝사랑하던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녀는 시, 서예, 그림 등에 모두 능했고, 미모, 가창, 서사, 시가에도 능한 데다 성리학 및 고전 지식에까지 해박한 말 그대로 '엄친딸'이었다.

 

황진이가 남긴 시조들은 높은 문학성으로 평가받아 고전 한국문학의 일부로 인정되고, 교과서에도 실린다.

 

조선시대에서 기생이라는 신분으로도 당당하게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는 죽기 전에 "나로 인해 천하의 남자들이 자정 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동문 밖 개울가에 시체를 두어 여인들로 하여금 경계로 하여 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황진이의 유혹을 거절한 서경덕

 

이미지 출처 - KBS2 드라마 '황진이' / 서경덕

서경덕은 1489년~1546년을 살았던 조선시대 시인, 문장가, 유학자, 사상가이다. 그는 스승도 없이 혼자서 사서육경을 연마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현량과에 응시하도록 수석으로 추천받은 것을 물리고 학문연구에 더욱 힘썼으며, 후에는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급제까지 했지만 대과와 벼슬을 거절했다.

 

그리고 명종 즉위 후 다시 조정에 출사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것 또한 거절하고, 스스로 은둔생활을 하며 평생 학문에만 전념했으며, 여색을 멀리했다. 그리고 그는 58세에 생을 마감했다.

 

뛰어난 미모와 재주를 가졌던 황진이는 당연히 인기가 많았다. 그녀는 선비들은 물론이고, 왕족인 벽계수의 콧대를 꺾기도 했다. 또, 명창인 이사종과는 6년을 같이 살았고, '생불'이라고 불리던 지족선사를 파계시켰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황진이도 서경덕은 끝내 유혹하지 못했다.

 

황진이는 서경덕을 여러 번 찾아갔지만 거절당했고, 비 오는 날에는 단호하게 돌려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황진이는 젖은 옷으로 서경덕을 찾아가 유혹하기까지 했지만 서경덕은 넘어가지 않았다.

 

황진이는 그런 서경덕의 인품에 더욱 감동하여 여인이 아니라면 제자로 받아줄 것을 청하여 두 사람은 결국 사제지간이자 서신 및 시문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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