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한 제국의 왕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영친왕'

영친왕(英親王)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순종의 이복동생이다. 본명은 이은(李垠), 영왕(영친왕) 1897년에 태어났으며 1900년 8월에 영왕(英王)에 봉해졌다.

 

순종이 즉위한 뒤, 1907년 11세의 나이로 덕수궁에서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영친왕은 '제국 없는 황태자'가 되었다.

 

게다가 같은해 12월 통감(統監)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다. 그렇게 영친왕은 일본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1911년 일본의 육군유년학교(陸軍幼年學校)에 입학한다.

 

1915년에는 일본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에 입학하며 1917년에 졸업한다.

 

1920년 4월에는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의 왕족인 나시모토 미야의 맏딸인 마사코(梨本宮 方子, 이방자)와 정략결혼을 한다. 이듬해 아들이 태어났고, 첫째 아들인 이진(李晉)은 1922년 한국을 방문하던 중 죽었다.

 

 

 

영친왕(英親王)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형식상 왕위 계승자에 올라 이왕(李王)이라 불렸다. 하지만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1년 둘째아들인 이구(李玖)가 태어났고, 영친왕은 일본 육군 장교로 복무하여 1940년 중장이 되었다. 1943년에는 일본의 제1항공군(第1航空軍)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복부하다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예편되었다.

 

대한제국의 왕이었으나 조선으로 귀국하지 못했고, 8.15 광복 후 귀국하려 했으나 국내 정치 실세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 이유가 반일정신을 고수한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있었는데, 일제의 영향력으로 그를 제치고 황태자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왕족과 결혼에다가 일본군 장성으로 까지 지냈으니..

 

1947년 일본 헌법이 시행되며 이왕의 지위를 상실한다.

 

1947년 10월 18일에는 일본 왕족의 명단에서도 제외되었고, 일본 국적도 상실한다.

 

1957년 일본 국적을 취득하였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친왕은 아들인 이구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59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된다.

 

무슨 의문인지 일본으로 자꾸 가게된다.

 

 

 

이은(李垠) 영친왕(英親王)

그 후,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뒤 1962년 12월 15일 한국 정부에 의해 영친왕 부부의 대한민국 국적 회복이 고시되었다. 1963년 11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주선으로 영친왕이 국적을 회복하면서 56년 만에 부인 마사코(이방자)와 함께 환국했다.

 

하지만 영친왕의 병세는 악화된 상태였다. 병상에 있다가 1970년 5월 1일에 사망한다. 그리고 고종이 묻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洪裕陵) 영원(英園)에 안장되었다.

 

사후, 전주이씨대동종양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이 그에게 의민(懿愍)이라는 시호(諡號)를 붙여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문중에서 사적으로 붙인 것으로 공적인 시호는 아니라고 한다.

 

친왕(親王)은 본래 황제가 귀비나 후궁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붙이는 호칭이라고 한다. 시대에 따라서는 황태자를 제외한 황제의 아들이나 황제의 형제들에게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고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고종37년(1900년) 8월 8일 탁지부 대신인 조병식(趙秉式)이 친왕(親王) 봉호망당자(封號望單子)에 관해 고종에게 보고자하, 고종이 직접 의친왕과 영친왕의 봉호를 정했다고 전해진다.

 

영친왕은 이은(李垠)의 대한제국 당시의 공식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한다.

 

 


 

2021.10.13 - [역사이야기] - 조선 말기는 미신에 미쳤고, 질병이 가득한 나라였다??

 

2021.07.16 - [역사이야기] - 조선 2대왕 정종(定宗)은 격구와 오락에 빠져 살았다??

 

2021.06.14 - [역사이야기] -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 조선의 신기술 때문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2021.03.30 - [역사이야기] - 이성계 할아버지 이춘(도조)의 설화, 백룡을 돕다?

 

2020.11.06 - [역사이야기] -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망자, 대한제국 마지막 왕자 이우(李鍝)

 

2021.08.29 - [역사이야기] - 조선 기생 명월이, 황진이도 서경덕은 유혹하지 못했다.

 

2021.05.18 - [역사이야기] - 정몽주 단심가, 과연 고려에 대한 충(忠)일까?

 

2021.03.10 - [역사이야기] - '임오군란'마저도 이용한 미개인들

 

2020.11.05 - [역사이야기] - 정조 - 콩가루 집안 싸움의 최대 피해자

 

2020.06.30 - [역사이야기] - 곤룡포 색이 바뀐이유, 선조의 쪼잔함과 뒤끝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