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해의 요새 '관미성'은 인천 교동도 '화개산성'이다??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지키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천해의 요새 '관미성'은 과연 어디일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관미성이 '사면이 깎아내린 듯 가파르고 길이 끊어진 해수로 둘러 쌓여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미성의 위치는 강화군 교동도(橋洞島), 임진강과 하강의 하류인 조강에 위치한 오두산성(鰲頭山城), 예성강 하구 등을 비정하고 있다.

 

그 중, 화개산성은 인천 강화 교동도 동쪽 내륙 중앙에 있는 화개산(해발 259.5m)에 위치한 내성과 외성을 갖춘 포곡식 산성으로 총둘레가 2168m에 달한다고 한다.

 

화개산성의 내성 둘레는 1103m, 외성 둘레는 1155m이다.

 

남쪽은 산 정상부 절벽으로 자연 성채로 사용되어 적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으며, 북쪽은 화개산 북쪽에 걸쳐 석축 구조를 갖추고 있다.

 

화개산성은 동서의 길이에 비해 남북 길이가 긴 형태로 축적됐다.

 

외성에는 북문과 동문, 서문이 있었고, 내성에는 북문과 서암문이 있었다.

 

화개산성이 언제 축조됐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화개산에 석성이 있는데, 둘레는 1565보이며 내부에 연못과 샘이 1개씩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세종 이전에 축조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 KBS드라마 '광개토태왕'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과 바다로 둘러싸여 천해의 요새라 불리던 '관미성'

 

삼국사기에서 광개토대왕은 392년에 4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석현(石峴) 등 10여성과 한수 이북 백제 부락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그해 10월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에 둘러싸인 관미성(關彌城)'을 함락시킨다.

 

인천섬연구모임은 백제 관미성이 인천 교동도라고 비정했다.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교동도 화개산성의 모습이 삼국사기에 표현된 관미성과 일치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고구려가 함락시킨 백제의 성 중에서 인천 영역으로 확실한 것은 396년 남진 때, 빼앗은 58성 중 하나인 미추성(彌鄒城)이다. 당시 인천의 지명이 미추홀(彌鄒忽)이었던 것을 감안할 경우 미추성의 위치가 인천이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일치된 견해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KBS드라마 '광개토태왕'

19세기 고산자 김정호가 파주 오두산성(烏頭山城)을 관미성으로 비정한 이후, 연구자들은 교동도와 강화도 봉천산, 예성강 하구 등이 옛 백제 관미성이 있던 위치로 추정하고 있다.

 

교동도를 관미성이라 생각하는 연구자들은 392년 7월 광개토대왕의 1차 남진 당시 예성강 부근 석현성 등 10성을 먼저 함락시킨 뒤, 10월 관미성을 함락시켰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예성강 하구에 위치한 교동도가 관미성일 거라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릉비에 의하면 영락 6년(396년) 백제를 공격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백제령이었던 56성 708촌(村)을 차지하고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56성의 하나로서 각미성이 등장하고 있다. 각미성은 백제의 관미성과 동일한 성으로 본다.

 

백제 아신왕(阿辛王)은 392년 8월에 좌장(左將) 진무(眞武)를 파견해 관미성의 탈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그러나 교동도에서는 아직까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물만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화개산성에 대한 연구조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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