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NATO)란

 

제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은 경제적으로 황폐해졌다. 소련의 물밑 작업으로 동유럽이 모두 공산화되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큰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대한 집단방위체제 확장을 위해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가 체결되었다.

 

1949년 4월 조인되었고, 그해 8월 24일부터 효력을 발생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의 본부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련 붕괴 이후에도 나토는 해제되지 않은 채 자유세계 영향권이 된 동구권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수용하여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초기 회원국은 영국, 미국, 캐나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프랑스였으나, 1966년 프랑스는 나토(NATO) 통합군에서 탈퇴했다가 2009년에 재가입한다.

 

 


 

나토(NATO) 탄생한 이유

 

북대서양조약기구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 등의 연합국들은 전쟁수행으로 군사력이 약화되었다. 반면 공산당을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세력을 얻고 있었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고, 서유럽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끝내 서유럽 연합군과 소련군의 전시 협조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양측은 독일 점령지역에서 각자 활동영역을 구축했고, 독일은 동독, 서독으로 분리되었다. 미국은 유럽에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을 계획한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브뤼셀조약에 따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가 집단방위동맹을 체결하였으나, 미국의 힘이 필요하게 되어 세력 확장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1949년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를 체결한다.

 

 

 

 

나토(NATO)의 본래 목적은 소련에 대한 집단안전보장이었으나, 1980년대 말 소련의 광범위한 개혁으로 냉전 구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영향으로 나토(NATO)는 군사동맹에서 벗어나 유럽의 국제적 안정을 위한 정치기구로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소련의 붕괴로 바르샤바조약이 폐기된다.

 

그리고 나토(NATO)의 영향권은 점점 러시아를 향해 동쪽으로 넓혀갔다.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9년 3월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으로 받는다. 2004년에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의 동유럽 국가들이 가입을 하고, 2009년 4월에는 크로아티아, 알바니아가 가입한다.

 

2016년에는 몬테네그로가 가입하며,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가입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 동맹의 중심이 되는 조항은 제5조이다.

 

"조약국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한 국가 또는 여러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 행위로 간주하며, 조약국 중 한 국가가 그러한 무력공격을 당했을 때에는 국제연합(UN) 헌장 제51조에서 인정한 개인 또는 집단의 자위권 발동에 따라 나머지 조약국들은 북대서양 지역의 안보를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무장군의 사용을 포함한 모든 행동을 개별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협의하여 즉각 활용함으로써 공격당한 국가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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