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은 조일전쟁의 막바지인 1598년 12월에 벌어진 조-명 연합군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자 전사한 전투기도 하다. 이 전투로 인해 조일전쟁은 사실상 마무리가 됐다.

 

이덕형의 보고에 의하면 왜적은 크게 패해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셀 수가 없었고, 죽고 다친 자는 수천 명이라 했다. 왜적 200여 척이 부서져 침몰했고, 100여 척은 나포되었다고 한다. 고니시의 군사들은 남해도 남쪽을 지나 퇴각, 시마쓰의 군과 함께 부산에 집결한 후, 철수했다고 한다.

 

1598년 8월 18일 히데요시가 죽었다. 왜장들은 서둘러 철수를 하는데, 만약 이순신 장군이 그냥 보내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부 사람들은 전투 의지를 잃은 적을 기어코 추격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
이미지 출처 - KBS1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노량해전이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의 해전기록은 사실 믿기지가 않는다. 그만큼 기적 같은 업적이다. 믿기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 사료와 일본 사료를 비교하며 하나하나 다 따져봤으나.. 모든 기록이 사실이었다.

 

해전 기록은 비판할 것이 없으니.. 별 이상한 걸로 비판을 했다. 산케이 신문의 서울 특파원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노량해전에 대하여 이런 기사를 냈다. '교전수칙에서는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지 않는 법인데, 이미 전투 의지를 잃은 적을 기어코 추격하다 전사한 게 뭐가 자랑이라고 이순신을 떠받드나'

 

할 말은 없고, 열등감이 넘쳐 흘러.. 미친척하고 발악을 한 것이다. 왜놈들은 교전수칙을 지켜서 조선 백성들의 코와 귀를 잘랐는가? 싸울 의지도 없는 백성들을 그렇게 학살했는가?

 

만약에 왜놈들이 철수한다고 그래~ 잘가라 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고니시 유키나가 등, 다른 장수들과 병사들이 온전히 일본으로 돌아가서 세키가하라 전투를 치렀을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서군이 승리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지를 잇는다며, 또다시 전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으로 융통성 없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히데요시가 하지 못한 대륙진출을 이뤄 드리겠다며 도전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최대한 타격을 주어 향후 전쟁 의지를 꺾은 것은 확실하다. 조선 백성들도 많이 희생당했지만 일본 백성 또한 많이 죽었다. 일본 백성들은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륙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미친 소리를 하며 침공한 왜놈들이다. 게다가 전황이 좋을때는 그렇게 설치다가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으로 인해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화의에 나섰다. 그것도 조선이 아닌 명과.

 

그리고,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웃긴 것은 조일전쟁 이후 10년 동안 일본과 단절되었었다. 전쟁이 정식으로 끝난 날은 광해군 1년(1609년) 기유약조를 맺은 후다. 정확히 300년 뒤에 또 다른 조약이 체결된다.

 

전투 의지를 잃었다고? 아니.. 본인의 입지가 줄어들까봐 어떻게든 빨리 본국으로 철수해야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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