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 당시 장태완은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신군부에 맞섰다.
그는 쿠데타에 협력할 것을 종용하는 신군부에게 전화를 걸어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들아. 너희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 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고 말했었다.
이후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서빙고에서 두 달 간의 문초를 받았다. 그리고 이등병으로 강제 예편당하고, 6개월 간 가택연금 생활을 하는 등 많인 고초를 겪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부친은 TV를 통해 아들이 보안사에 끌려가는 모습을 본 뒤 매일 술에 의지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에 모반이 있을 때, 충신은 모반자들에 의해 살아남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을 남기고 식음을 끊고 별세했다고 한다.
장태완의 아들은 가택 연금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집을 나가 한 달 만에 경북 왜관 낙동강 인근 산기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등병 강등의 사례는 더 있다.
창군 이래 장성이 이등병으로 강등된 사례는 총 8번 있었다고 한다. 88년 12월 병역법에 '계급 회복 제도'가 신설돼 대부분은 복권됐다고 한다.
■ 윤필용 사건
최초 이등병 강등 사례는 1973년 3월 '윤필용 사건'이다. 군 고위 인사들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몰아내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권좌에 올리려고 했다는 그 사건이다.
윤필용 소장, 손영길 준장, 김성배 준장 등 핵심 주동자로 꼽힌 3명은 모두 옥살이를 하고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군복을 벗었다. 하지만 훗날 무죄로 밝혀졌다.
윤필용 소장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술자리에서 "각하(박정희)는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후락)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그렇게 된 것이다.
■ 정승화 윤군참모총장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12·12사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 체포된다.
그는 신군부에 의해 '김재규 내란기도 방조혐의'로 군적을 박탈당하고,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전역한다. 군 최고 계급인 대장 포스타가 이등병이 된 최초 사례인 것이다.
정승화는 훗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재판받을 때만 해도 내가 이등병으로 강등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박탈당했다는 생각뿐이었다"라고 말했다.
81년 3월 사면복권. 97년 7월 무죄 판결을 받아 복권되었다.
■ "(해군) 이상석 씨가 수상하다"
1984년 8월 보충대 입영 장병 대상 대공설문 조사에서 "(해군) 이상석 씨가 수상하다"라는 내용의 설문이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보안사는 전역 예정이었던 그를 불법 감금해 조사를 했다.
그는 1984년 10월 22일 전역 예정이었다.
조사가 이어지며 전역일이 돼 자동으로 풀어줘야 했으나, 보안사는 해군본부에 그의 전역명령을 취소한다. 그리고 구속이 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돼 1년 징역과 이등병 강등이 되었다.
■ 이지문 육군 중위 이등병 강등
노태우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당시 이지문 육군 중위가 군 부정선거를 폭로했다가 이등병으로 강등된다.
1992년 3월 22일 군의 조직적 부정선거 행위를 폭로한 이지문 前 중위는 당일 체포돼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불명예 전역을 한다. 그리고 3년 뒤 재판을 통해 중위로 복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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