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덕분에 '경순공주'가 여승이 되는데.. 이유가 뭘까?
청룡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이성계의 딸인 경순공주가 머리를 밀고 여승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 최초로 출가한 왕족 경순공주에 대하여 알아보자.
경순공주는 실록과 <선원록(조선 왕실 족보)>, <돈녕보첩(국왕과 왕후의 친족)>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의 셋째 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 말 '금석문'에 의하면 이성계의 다섯 딸 중, 가장 먼저 태어났다고 한다.
*금석문(金石文) - 돌이나 금속 따위에 새겨진 글
경순공주의 태어난 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태조 이성계의 딸들은 전부 생년이 알려지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무튼 신의왕후 소생인 경신공주와 경선공주에 이은 적 3녀로 추정되어 왔었다.
그런데,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의 <신도비> 기록에는 1387년 당시 경순공주가 이미 남편 이제(李濟)와 혼인한 상태로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태조의 세 적녀 중 적장녀이자, 태조의 다섯 딸 중 장녀로 추정된다.
고려 여성 평균 결혼 연령이 16.3세였는데, 경순공주가 1387년 기준으로 16세에 결혼을 했다면 1372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뭐.. 이건 추측이지만 이방원에 의해 기록이 지워졌을지도..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경순공주의 친동생들인 이방번과 이방석을 살해한다. 또한 이방석을 세자로 옹립하거나 이방원을 견제하려 했던 공신들도 제거하며, 경순공주의 남편 이제도 사형된다.
남편과 남동생들을 다 잃은 경순공주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신덕왕후의 살아남은 유일한 자식이자, 방번과 방석의 누나였기 때문에 이방원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경순공주마저 잃을까봐 직접 딸의 머리를 밀었고, 출가시켜버린다.
이후, 이성계는 경순공주를 그리워하며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경순공주는 정업원(淨業院)인 청룡사에서 지냈는데, 당시에 갈 곳을 잃은 고려 왕족들의 처 등 왕실 여성들이 많이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공민왕의 2비인 혜비 등 왕실 여성들은 경순공주를 따뜻하게 맞아줬다고 한다.
*정업원(淨業院) - 고려와 조선 때, 도성 안에 있던, 선비의 집안이나 궁중의 여인들이 출가하여 머물던 비구니 처소.
이후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 숭유억불 정책을 펼쳐 불교 고단의 세력을 강제로 축소시켰다. 하지만 경순공주가 머물고 있던 정업원은 예외였다.
신하들은 정업원의 예산이 사치스러워 폐쇄를 주장했으나, 정업원을 끝까지 유지시켰다. 그래서 태종 이방원의 누이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시각도 있다.
경순공주는 아버지인 이성계, 이복 오빠인 정종, 태종 이방원보다도 앞선 1407년에 세상을 떠났다. 태종 이방원은 조문했고, 애도하는 의미로 며칠 동안 고기반찬을 피했다고 한다.
훗날 세종대에 남편 경순공주의 남편인 이제가 신원되었고, 태조 이성계의 묘향에 배향된다. 그리고 고종 9년(1872년), 조선 초기 궁주(宮主)들의 봉작을 공주(公主)로 바꾸면서 경순공주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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