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과 메이저리그에 대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최동원이 왜?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했는지 궁금하시다면 끝까지 읽어주세요! 최동원과 메이저리그에 대한 정말.. 슬프고, 황당한 이야기.. 시작합니다. 아래에서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최동원

 

최동원

실업 롯데

 

최동원은 실업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1981년 실업리그 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투수다. 최동원의 실력은 정말 뛰어났다. 하지만.. 국가를 잘못(?) 만난 탓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토론토 블루제이스' 입단 제안은 최동원에게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최동원은 많은 실업팀으로부터 구애를 받았다. 그 가운데 실업 롯데(롯데제과 야구단)가 다른 팀보다 많은 계약금을 챙겨주겠다고 약속했고, 5천만 원에 입단 합의를 봤다고 한다.

 

그런데 2천100만 원은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2천900만 원은 6개월 약속어음으로 끊어줬다고 한다. 이에 반발하자 롯데는 못 믿냐며 시국이 시국인만큼 언론엔 3천만 원에 계약한 것처럼 알리자고 제안했다.

 

결국 그 돈은 받지 못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롯데 한 관계자는 계약금을 반으로 깎아줄 수 없냐고 제안했다. 이에 응하지 않자 최동원 부자는 돈밖에 모르는 나쁜 인간이라고 악담을 늘어놨다.

 

롯데가.. 이럴 수가.. 최동원은 크게 상심했다.

 

 

메이저리그 가지 못한 이유..?

메이저리그

 

그러던 중, 최동원이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캐나다에서 열린 대륙간컵대회에서 최동원이 호투를 펼치자 메이저리그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입단 제안을 해왔다.

 

최동원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동경한 건 사실이지만, 언젠가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길 것으로 예상해 국외리그 진출보단 한국에 남아 계속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다"라며 "그런 날 토론토와 계약하게끔 유도한 건 '겉과 속이 달랐던 사람들'"

 

토론오와 계약을 하고, 최동원은 사인했다. 아메리칸리그 사무국이 이를 승인하며 양자의 계약은 정식 계약이 된다. 그런데, 최동원은 토론토에 입단하지 않았다.

 

토론토와의 정식 계약을 '가계약'이라 주장하며 "토론토가 제시한 연봉이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인 줄 몰랐다"라고 항변했다. 조건이 생각보다 괜찮았는데도 왜 그랬을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하는 최동원 아버지의 표정은 무척 심각했다. 전화를 끊고, 누구냐고 물었더니 '모처'라고만 답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말을 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최동원이 토론토와의 계약이 사실이면 신분이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며, 조만간 있을지 모르는 병역혜택 대상자에서 제외될 것.. 그렇게 되면 병역미필자로 남아 메이저리그에는 진출하지 못한다.

 

또한, 실업야구에도 뛸 수 없는 '야구계의 영구 미아'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그리고 '우리 조언을 듣고 자중하는 게 아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우선 토론토행을 미루고, 내년(1982년)에 열리는 세계 야구선수권대회에 나가 우승으로 이끌어준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최동원의 메이저리그행을 돕겠다고 했다.

 

 

정리

  1. 최동원은 실업 롯데 자이언츠 투수다.
  2. 최동원은 한국인 메이저리그 1호가 될 뻔 했다.
  3.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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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이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게 있다면 상단의 글들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 좋아요, 하트(공감)를 해주시면 블로그 유지보수에 에너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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