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 관저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귀신때문?

아베 신조 前 총리가 일본 총리 관저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귀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총리의 집무실인 일본 총리 관저에는 총리가 숙식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그런데 아베 신조는 일본 총리 관저 입주 거부했다.

아베 신조는 총리 시절에 시부야에 있는 자신의 사택에서 총리 관저로 매일매일 출퇴근했다고 한다.

 

아베 신조 1기 내각 때, 그는 총리 관저에 입주해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로 인해 아베 신조는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그 이후로 아베 신조가 총리 관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베 신조의 이러한 행동은 야당에서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베 신조에게 "안보 위기의식이 없다고"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는 "총리 생활과 사생활을 구분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아베 신조'가 일본 총리 관저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귀신 때문이다??

한편 아베 신조가 총리 취임 후, 관저에 들어가지 않자 총리 관저에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 총리 관저에서 1932년 5.15 사건 때,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피살되었다. 이후 일본 총리 관저에서 전직 총리들이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국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이 사건 때문에 들어가지 않는 거냐"라고 물었지만 아베 신조는 "귀신 때문에 관저에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소문은 알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요미우리 TV' 방송에서 모리 요시로 前 총리가 "관저에서 귀신의 다리를 봤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로 인해 아베 총리가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소문은 계속 나돌았다.

 

 

 

와카쓰키 레이지 前 총리

1932년 5.15 사건 당시 피살된 '이누카이 쓰요시 前 총리'는 누굴까? 피살된 이유는 뭘까?

 

1938년대 초, 세계 대공황으로 일본도 불황이 시작되었다. 기업도산이 줄을 이었고, 사회불안이 높아졌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의 긴급 요청으로 통조림을 수출하며 돈을 꽤 벌었다. 하지만 제품 품질은 좋지 않았다. 대공황이 발생하고, 품질이 열강 국가보다 좋지 않았던 일본은 판매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타국을 침략해 해결하려고 했고, 1931년 일본 육군 관동군 일부가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때문에 정치도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일본 해군은 혼란한 일본 상황과 1930년에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체결한 일로 일본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 일본 해군뿐만 아니라 국가주의자, 극우세력들은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통수권 침해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특히 과격파 일본 제국 해군 장교들은 '런던 해군 군축조약' 체결 직후부터 입헌민주당의 '와카쓰키 레이지로' 총리를 죽일 기회를 노렸다.

 

 

 

이누카이 쓰요시 前 총리

1932년 2월, 민정당의 '와카쓰키 레이지' 총리의 임헌민정당이 실권한다. 그리고 입헌정우회(정당)에게 다시 정권이 돌아가게 된다. 후임 총리로는 '이누카이 쓰요시'로 결정이 되었다. 당시 의원들과 원로들은 폭주해가던 군부를 잡기 위해 이누카이 쓰요시를 선출한 것이었다.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는 호헌파의 중진으로 군의 축소를 지지했다.

 

1932년 5월 15일 오카와 슈메이, 도야마 미쓰루, 다치바나 가지야, 미카미 다카시 등 11명이 극단적 우익단체인 '혈맹단'을 창단했다.

그리고 정당과 재벌 타도를 목표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해군 청년 장교 10명, 육군 사관후보생 11명, 민간 농본주의자 일파로 구성된 쿠데타군은 정우회 본부, 경시청, 일본은행 등을 습격했다.

 

5시 30분, 해군 중위 '미카미 다쿠'가 이끄는 해군사관 4명과 육군 사관생도 5명이 총리 관저를 침입한다. 측근들은 이누카이 쓰요시에게 도망치라고 했으나, 그는 쿠데타군과 대화를 시도했다.

 

뒤늦게 관저에 들어온 해군 소위 '구로이와 이사무'의 총에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는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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