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는 2017년 치러진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김관용, 김진태,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압도적인 차이의 득표율을 확보하며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그 당시 자유한국당 경선은 국민 여론조사 50%, 현장투표 50%를 반영해 치러졌고,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은 54.15% 였으며, 나머지 후보들의 득표율은 10%대였다.
홍준표는 수락연설에서 "유약한 좌파 정부가 탄생하면 대한민국은 살아날 길이 막막하다"라며 "이제는 강단과 결기를 갖춘 스트롱맨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강한 대통령' 면모를 밀어붙였었다.
홍준표는 무너져가는 한 자릿수 지지율에서 출발해 막판 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다시 집결시키고,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준표는 막말과 거친 언행 탓에 '꼰대' 정치인 전형으로 꼽혔지만 변화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만큼 청년들에게 호응받는 분위기를 넘어 지지율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
메시지 관리가 세련되고 정교해졌으며, '사이다성' 직설화법을 지키면서 공감대를 정밀 타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사이트케이 배종찬 연구소장은 20~40대의 '영(젊은) 보수 현상'을 겨냥해 홍준표 의원이 '하고 싶은 말을 시원시원하게 한다'는 인상을 주며 인기를 얻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홍준표 '세상을 한 번 뒤집어보자'
이렇게 강하게만 보이는 홍준표에게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이야기가 있다. 홍준표의 아버지가 육군사관학교로의 진학을 권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등록금이 없다'
홍준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가정의 자식들처럼 부모님에게 대학 등록금을 받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누구 집 자식처럼 빽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입시용으로다가 경력을 딱 만들어주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합격을 했지만, 그 해 12월에 홍준표의 아버지는 '도둑' 누명을 썼다. 비료를 훔친 사람으로부터 '장물 취득' 누명을 썼다. 홍준표의 아버지는 경찰에게 붙들려 가서 이틀을 고생했다고 한다.
홍준표는 '경찰보다 더 높은 직업이 뭐냐?', '검사'를 하면 경찰을 잡을 수 있다고... 그래서 홍준표는 "엄마, 내 육사 안 간다. 그리고 내가 검사를 해야 되겠다!"
홍준표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가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홍준표는 고등학교에서 이과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이과에서 문과 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한다. 거의 안됐다고 보면 된다. 홍준표는 선생님한테 가서 고려대학교 법과 대학 원서를 써 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우리 영남 고등학교에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간 일이 없는데, 너 인마 육사 됐으면, 1년에 한 두 명 육사 되는데 거 가지 인마. 너 인마 합격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홍준표는 선생님을 설득해 입학원서를 받아냈다. 그래서 25일 문과 공부를 해서 2월 초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다.
합격을 했으면 기뻐야 하지만, 홍준표의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당시 등록금이 5만 6천 원이었다고 한다. 등록금이 없던 홍준표 역시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이웃집에서 일하고, 돈을 빌린 게 7만 원이었다고 한다. 5만 6천 원은 등록금으로 내고, 남은 1만 4천 원으로는 한 달 하숙비였다.
홍준표는 동대구 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때 나이가 18살이었다고 한다. 서울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친척도 없고, 형제도 없었다.
홍준표는 학비를 자신의 힘으로 벌어 고생하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합천에 있는 집이 불에 타버렸다. 강변에 초가집, 오두막을 짓고 살던 뒷 집사람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는데 자신의 집은 타지 않고, 홍준표의 집에 불이 옮겨 붙어 타버렸다고 한다. 홍준표의 가족들이 살아갈 집이 사라졌다.
그 당시 울산에는 공업지대가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홍준표의 가족들은 울산으로 가게 되었다. 홍준표의 가족들은 집의 재산을 전부 팔고, 74년도 돈으로 32만 원으로 울산에 가서 월셋방을 하나 얻었다고 한다.
홍준표의 누나와 여동생은 공장에 다니게 되었다. 홍준표 아버지는 울산에서 현대 조선소에서 낮에 배를 만들다가 남은 철근을 지키는 야간 백사장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 당시 현대 조선소에는 '담'이 없었다고 한다. 철조망 쳐 놓고, 바닷가에 막 배를 만들 때라고 한다.
홍준표의 기억으로 그곳의 온도는 영하 18˚ ~ 20˚ 정도 됐었다고 한다. 그때 그 추운데, 회사에서는 바람막이 하나를 안 해줬었다고 한다. 백사장에 의자 하나 놔 두고, 횃불 하나 놓고 밤새도록 지켰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홍준표는 '세상이 왜 이리 불공평하냐...'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힘들게 사냐'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 '세상이 한 번 뒤집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홍준표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라도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되겠다' 나의 아버지가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세상이 진짜 이거 한 번 뒤집어져 봤으면 좋겠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되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그런 세상이 한 번 돼 봤으면 좋겠다'
홍준표의 아버지는 61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홍준표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바닷가에서 추위를 견디라고 회사에서 '막소주'를 줬다고 한다. 홍준표의 아버지는 하루 저녁에 막소주를 한 병씩 마셨다고 한다. 매일을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8개월 ~ 10개월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때 홍준표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홍준표 역시 학생운동을 하면서 '세상을 한 번 뒤집어보자'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했다고 한다. 홍준표는 그때부터 학생 운동을 하지 않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홍준표의 아버지는 일당 800원 받던 경비원이었다. 홍준표의 어머니는 글을 몰랐다. 하지만 홍준표는 열심히 노력했고, 정말 바르게 살았다. 홍준표는 그렇게 힘들고, 가난했다. 밥 굶는 날이 밥 먹는 날 보다 더 많았어도 삐뚤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을 모시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홍준표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정말 세상이 불공평하고, 어렵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나는(홍준표) 밑바닥부터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그 어렵게 살았던 그 시절, 내가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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