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1월 2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북한의 무장간첩들에게 12월 9일 밤, 이승복은 10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살해당했다. 이승복의 아버지와 형은 크게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날은 이승복의 생일이었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가족들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무장간첩들이 쳐들어와 이승복의 어머니 이마에 기관단총을 들이대며 밥을 지어달라 협박했다고 한다.
이승복의 어머니는 "쌀이 없다"라고 했다. 북한 무장간첩들은 "강냉이(옥수수)나 삶으라우"라고 하여 간첩 2명의 감시 하에 옥수수를 삶아서 줘야 했고, 이승복 등 3남매는 간첩 3명에게 둘러싸여 감금됐다고 한다.
무장간첩들은 옥수수를 먹고 이승복의 가족 5명을 안방에 몰아넣고 체제선전을 했다.
"남조선(남한)이 좋으냐? 북조선(북한)이 좋으냐?"라고 질문했는데, 이승복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 무장간첩 중 1명이 이승복을 끌고 온 뒤 나머지 가족들도 같이 끌고 갔다.
북한 무장간첩들은 이승복의 어머니를 벽돌만 한 돌덩이로 쳐서 살해했고, 이어서 이승복은 양 손가락에 입을 찢기고, 돌까지 맞아 비참하게 죽었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살해되어 퇴비더미에 묻혔다.
이후 발견된 이승복의 시신은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진 상처가 있었고, 뺨 중간과 귀 근처에 십자 형태의 상처 2개가 뚜렷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승복의 형은 36곳에 칼을 맞고 거름더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나이는 15세였다.
이승복의 아버지는 이웃집 이사를 돕다 돌아와 북한 무장공비에게 붙잡혀 칼에 다리를 찔렸으나, 도주해 향토예비군 초소까지 가서 신고했다.
조선일보는 이승복 가족 4명이 북한 무장군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군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는 특종 보도를 한다.
당시 취재기자는 강인원과 송종헌 2명이었다.
<잔비(공비 잔당), 일가 4명을 참살>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
그런데, 계간 저널리즘 1992년 가을호에 그 당시 미디어오늘의 편집국장 김종배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라는 기사에서, 조선일보의 기사가 허위라고 주장했다.
김종배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이승복의 형의 이름을 잘못 기록했다는 점', '그의 집이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 소리를 듣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후에 '이승복의 형이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밝힌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승복 시신의 입이 찢어져 있지 않았다'는 주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조선일보의 기자를 "작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승복의 형이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밝힌 게 크게 문제가 되었는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포함한 사건 증언 전체가 이승복 형의 입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인 김주언은 1998년 8~9월 사이 부산역 광장에서 '오보 전시회'를 열어 김종배의 기사를 전시했고, 10월에는 미디어오늘과 월간 말을 통해 더 많은 근거를 들어 오보 내지는 작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김종배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재반박 기사를 내며 '현장 취재 없이 작성된 기사라고 거듭 주장한다.
1998년 9월 17일에는 "이승복 동상 업애야 한다(창원대 교육학 교수, 경남대 사회학 교수)"라고 보도가 된다.
1998년 9월 22일에는 MBC PD수첩 "오보 그 진실을 밝힌다" [사실이 아니다. 이학관(이승복 형)씨 말 100% 믿을 수 없다]
이승복 군의 아버지(이석우)와 형(이학관)은 PD, 교수 등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조선일보는 1998년 11월 김주언과 김종배 두 명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다.
1999년 7월 서울지방검찰청은 두 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2002년 9월 3일 형사 1심에서 두 명에게 각각 징역 6월과 10월을 선고했다.
2004년 6월 16일 민사 1심에서 사실인정 [공산당이 싫어요·조선일보 현장취재·오보전시회, 명예훼손 인정]
2004년 10월 28일 형사항소심에서 김주언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김종배 무죄
2006년 11월 24일 형사대법원 김주언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김종배 무죄 확정
2007년 9월 5일 민사항소심에서 김주언 500만 원 배상, 김종배 처벌없음
2009년 2월 12일 민사대법원 김주언 500만 원 배상, 김종배 처벌없음 확정
형사·민사소송 모두 일관되게 "공산당이 싫어요" 실제 / 사실확인 확정 판결
이승복 "공산당이 싫어요" 사건에 대한 일부 언론인의 역사 뒤집기 시도는 실패했다.
사건 이후, 이승복의 아버지와 할머니는 조현병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후유증으로 4~5년을 술에 의지하며 살았고, 유가족들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얻어먹고 생계를 유지했다.
할머니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승복의 형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10년간 약물치료를 받으며 고등학교 입학도 21세가 돼서야 했다고 한다.
1968년 대한민국에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 중, 한 사람인 김익풍씨가 이승복 41주기 기념식에서 이학관 씨 부부에게 사죄하기도 했다.
결국 이승복 "공산당이 싫어요" 사건에 대해 거짓이라고 밝혀진 게 없음에도 김대중과 노무현의 진보정권에서 사라져 가던 반공주의 기조와 함께 이승복 기념사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소송이 벌어지는 기간 동안 전국 초등학교 중 70~80%는 이승복 동상을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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