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光復節)은 한반도가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광복절인 양력 8월 15일을 국경일 및 공휴일로 법제화하여 매년기념하고 있다.
한반도는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을 통해 전개된 군정에 따라, 구 '대한제국' 지역의 반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이 되었고, 반은 공산주의 체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나 북한에서는 똑같이 8월 15일을 기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의미는 크게 다르다. 대한민국에서는 정부를 수립한 과정을 아울러 광복(光復)으로 명명하여 기념하고 있고, 북한에서는 조국 해방의 날(祖國 解放)이라 한다.
8월 15일은 이렇게 뜻깊은 날이기도 하지만 육영수 여사의 사망일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29주년 기념식 날이었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 행사에서 육영수 여사는 문세광이 쏜 권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사인은 두부관통상이라고 한다. 육영수 여사는 향년 48세였다. 그 당시 육영수 여사뿐만 아니라, 합창단원으로 참가했던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 장봉화 양(1957-1974)도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조문객 수만 20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요시이, 문세광은 재일 교포로 당시 23세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의혹 많은데, 당시 울린 총성은 들었던 사람에 따라 6발 ~7 발이다. 하지만 문세광은 4발만 쐈다. 현장에서 총알, 탄피를 수거해 권총과 대조해보면 답이 나왔을 텐데, 서울지방경찰청 감식계장 이경감이 24시간 대기 명령을 받고 현장에 가보지도 못했다.
그 사이 수사결과는 발표되었고, 문세광은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은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육영수 여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TBC 석간'의 진행자 봉두완(前 국회의원)의 회고록에 따르면 'TBC나 DBS 동아방송이 정부 비판적 보도를 하여 관련자들이 고생할 때, (육영수 여사가) 옆에서 견제하며 뜯어말리고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봉두완과 박정희 前 대통령, 육영수 여사가 3자 대면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부분들은 연합통신과 동아일보 출신 이만섭(前 국회의장)의 회고록에서도 등장한다.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이성적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육영수 여사는 항상 한복 차림과 매우 꼼꼼하고 소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많은 민원과 진정서, 편지들을 처리했고, 일부 고위직을 견제하는 등 눈에 안 보이는 역할을 수행하며 박정희 前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부분을 채웠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육영수 여사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고아원과 보육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많이 신경 썼다.
불우 청소년들의 직업 보도를 위해 정수직업훈련원(現 한국폴리텍대학)을 설치했다. 육영재단을 설립해 어린이 복지사업을 위해서 어린이회관과 기타 사업을 영위하며 아동복지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1973년 육영수 여사는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하여 듣고, 노동자들이 '전태일'의 뜻을 받들어 노동교실을 설립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챙겼고, 지원했다. 노동자들의 권익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 당시 한센병은 다들 알다시피 환자의 외형이 아주 끔찍했고, 세계적으로 괴물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 병에 대한 인식이 심해서, 전염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사람들이 믿었었다. 때문에 문둥병(나센병) 환자와의 만남을 절대적으로 금기시했었다.
한센병의 전염 여부가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기에 의사나 간호사조차 꺼릴 정도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런데, 육영수 여사가 한센인 정착촌(전남 나주시, 전북 익산시)에 찾아갔다. 육영수 여사는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한센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심지어 손에 붕대를 칭칭감은 나센병 환자가 내민 대나무 소반 속의 사과를 꺼내 들고 덥석 베어 물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를 지켜보던 환자들은 흐느끼기 시작했고, 육영수 여사는 그들의 눈물을 일일이 닦아 주었다고 한다.
한센병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육영수 여사는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세상이 그들을 외면할 때 육영수 여사는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육영수 여사는 한센인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다과회를 열기도 했고, 정착촌에 구호물품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소록도에 국립 소록도 병원까지 지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다. 육영수 여사의 이런 행보는 대한민국에서 큰 충격을 가져다줬고,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1974년 소록도 양로원 준공식에 육영수 여사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문세광의 저격으로 사망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2000년대에 이희호가 영부인으로서 소록도를 방문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가 한센인들의 서러움을 닦아준 것이 진심으로 통했던 것인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라도에서 유일하게 소록도에 있는 도양읍 제7투표소에서는 육영수 여사의 딸인 박근혜 후보가 62.65%(득표수 박근혜 270표, 문재인 158표)의 지지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천정환 교수는 2014년 경향신문에 올린 본인의 글에서 한국행정학회가 조사한 한 자료에 따르면 역대 영부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육영수 여사'만 긍정적으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박정희 前 대통령에게 맞서 싸웠던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들도 육영수 여사에 대한 비판은 자중했다. 박정희 前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육영수 여사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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