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는 '직지심체요절'을 구매했다.

독일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만든 것은 15세기 중반이었다. 이것보다 빠른 금속 활자는 '직지심체요절'이다. 구텐베르크보다 78여 년 빠른 14세기에 금속 활자로 책을 찍어내고 있었다.

 

직지심체요절은 우리가 자랑하는 불교서적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다.

 

하지만 직지심체요절은 '콜랭 드 플랑시'가 프랑스로 가져갔다.

 

문화재를 약탈해간 것이 아니라, 골동품상에게 값을 치르고 구매해서 가져갔다.

 

그 당시 1886년 조·프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프랑스 대리 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는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근무하면서 조선의 고서와 미술품, 문화재 등을 수집해 갔다.

 

콜랭 드 플랑시는 조선에서 수집해 간 대부분의 고서를 모교인 동양어 학교에 기증을 한다. 그중 직지심체요절은 앙리 베베르가 180프랑에 구입하여 훗날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기증했다.

 

 


 

직지심체요절

 

백운화상

직지심체요절은 승려인 '백운화상'이 부처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간 유명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뽑은 내용들을 수록해 놓은 책이라고 한다.

 

백운화상은 13세기 말,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황해도 해주의 안국사와 신광사 등에서 주지를 지내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1372년, 75세 때 성불산 성불사에서 직지심체요절을 저술했다. 본래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하'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있다.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로 "참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본다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이다.

 

 

 

직지심체요절, 금속 활자

직지심체요절의 본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라고 한다. 이름이 너무 길어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불리고 있다.

 

백운화상은 1374년 77세의 나이로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승려가 죽음)했다.

 

1377년, 직지심체요절은 청주 흥덕사에서 석찬, 달잠, 묘덕에 의해 금속 활자로 인쇄되었다. 묘덕 스님의 재정 지원을 받아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간행되었다. 석찬 스님은 백운화상의 비서 역할을 했었고, 달잠 스님은 백운 화상의 제자였다.

 

 


 

직지심체요절은 그냥 골동품

 

조선

조선말, 이하응(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계기로 프랑스는 강화도에 무력으로 침범해 정족산성을 불태웠다. 그리고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조선왕조 의궤'도 프랑스로 건너갔었는데, 영구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프랑스는 특히 외국의 약탈 문화재가 많기 때문에 약탈 문화재 반환의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직지심체요절은 값을 치르고 가져갔기 때문에 반환에 대한 태도는 더더욱 미지근할 것이다.

 

 그 당시 직지심체요절은 그냥 골동품에 불과했다. 지금은 '조선왕조 의궤'보다 더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겠지만, 그 당시 조선은 정말 무능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직지심체요절이 공동품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조선은 이런 나라였다.

 

더 웃긴 것은 판매하는 상인도 그냥 고서(고서)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조선이 팔아버린 '직지심체요절'은 언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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