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소련은 한반도를 공산화시키기 위해 지도자를 선정해야 했다.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선택받은 이유야 많겠지만, '잘 놀아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김일성(金日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최고지도자며, 1948년 9월 9일 ~ 1972년 12월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수상을 지내고, 1972년 12월 28일 ~ 1994년 7월 8일 사망 전까지 최고지도자였다.
박헌영(朴憲永)은 북한에서 남조선노동당 부위원장, 북한 정권 부수상, 외무성 외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1953년 김일성에 의해 남로당계 숙청이 감행되면서 1953년 8월 3일 체포되어 평안북도 철산군 내의 산골에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다. 1955년 12월 15일 미국의 첩자·정부 전복 음모 등의 죄목으로 1956년 7월 19일에 처형당한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하고, 막말도 했으며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참고로 박헌영은 김일성에 비해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더 많았다.
하지만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밀려난다.
박헌영은 '유흥과 놀이'에 대해 아무런 관심과 흥미도 없었고. 그런 행동은 훗날 취약점으로 작용했다.
김일성은 '유흥과 놀이'를 아주 잘했고, 즐겼다고 한다.
스탈린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소련에서 김일성은 잘 놀고, 잘 마셨다.
김일성은 당시 자신의 관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소련 대사관도 자주 찾아갔다. 대사관 사람들이랑 어울려 술도 마시고, 노래와 당구도 즐겼다고 한다.
결국, 스탈린은 김일성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스티코프' 연해주 군관구 정치위원이 보낸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김일성은 골수부터 뼛속까지 소비에트 사람이며, 자식들이 우리나라(소련)에서 태어난 빨치산'
박헌영은 남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소련군 관계자들에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박헌영 측에서는 집요한 이의 제기가 있었다. 1946년 7월 초, 스탈린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모스크바로 불렀다. 그리고 지도자 면접시험을 봤다.
박헌영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보여주기 식이었고, 스탈린은 오로지 김일성이었다.
스탈린이 1945년 9월 20일 극동군 총사령부와 연해주군관구 및 북한을 점령한 25군의 군사평의회에 "북조선에 민주정당과 사회단체들의 광범한 블록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민주정권을 창설하라"라고 비밀 지령문을 내려보낸 것이 남북 분단의 시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미 9월 초에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선택하면서 한반도를 분할 지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거기에 김일성이 꼭두각시로 선택된 것이었다.
김일성은 지도자가 되기에는 학력이나 경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외국에서 성장해 조선의 국내 사정에도 어두웠고, 조선말도 심하게 더듬거렸다.
또한 대중들은 김일성이 어디서 뭘 하다 온 사람인지도 몰랐고, 국내 지지세력도 없었다.
이런 그를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평양의 소련군정 인사들은 정치공작을 진행하면서 김일성이 정치적인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 교육도 시켰다. 한일들을 불러 당과 정부 운용 방침도 교육했다.
김일성은 소련이 무력과 정치공작을 동원해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조만식을 제거하고, 자신들 목적에 맞게 만들어낸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When he was taking his first steps towards power, he didn't do anything without our advice(그가 권좌를 향한 첫발을 내디딜 무렵에는 우리의 조언을 듣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메클레르 회고-
"We created him from zero(우리는 無에서 김일성을 만들어 냈다)" -레오니드 바신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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