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격호 명예회장은 도쿄에서 우유배달원으로 일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 특이하고,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묵묵히 걷는다.

 

일본 도쿄에서 우유배달원으로 일을 시작해, 껌을 팔았고 그 후 70년 만에 한국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키워냈다. 그 사람이 바로 롯데 '신격호'이다.

 

신격호는 1921년 경남 울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등본상에는 생년월일이 1922년 10월 4일이었지만 실제 1921년 11월 3일생이다. 

 

신격호의 어린 시절은 일제시대였다. 하지만 신격호의 부친은 교육열이 대단했기에 그를 언양소학교, 울산농업실수학교를 졸업시켰다. 그리고 졸업 후, 목양 지도기술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신격호는 일반 사람들과는 꿈이 달랐다. 더 큰 무대에 가고 싶어 했고, 큰 세상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그 의지에 따라 1941년 부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신격호가 일본에 도착해 도쿄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우유배달원이었다고 한다. 그의 특유의 친화력으로 많은 고객을 유치했고, 우유 대리점 매출을 늘렸다고 한다.

 

증가한 우유 배달 물량을 맞추기 위해 다른 배달원을 직접 고용할 만큼 그의 경영 능력은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신격호는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사업 자금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화장품 사업 등을 커쳐 1948년 롯데를 설립하게 된다.

 

롯데라는 이름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 소설을 신격호가 고학생 시절에 읽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 여인처럼 모든 제품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롯데가 그런 의미였다니.. 신격호 명예회장의 감성이 남다른 것 같다.

 

신격호의 롯데의 뿌리는 '껌'이라고 한다. '껌' 단일 품목으로 사업을 시작해 초콜릿, 캔디 등으로 분야를 확대해 나아갔다. 그렇게 불과 20여 년 만에 롯데는 일본 굴지의 종합제과업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신격호의 롯데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약제사를 고용해 연구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했고, 연구했으며 그 결과 해외 기업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최상의 품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신격호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

대한민국의 일부 사람들은 신격호의 롯데를 일본이라 하며 비난한다. 그 이유가 일본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격호의 롯데는 대한민국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신격호가 일본에서 아무리 잘했어도 그는 한국인이다. 그는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소망을 키워나갔다고 전해진다.

 

사실 출발은 삐걱거렸다. 1965년, 한일 수교가 이뤄지고 신격호는 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로부터 제철업 진출을 제안받았고, 구체적인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갑자기 직접 제철업을 추진하겠다고 전하면서 신격호의 롯데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신격호가 거액을 들여 준비한 제철 관련 자료를 대신 제철업을 준비하던 포항제철 '박태준'에게 조건 없이 제공했다고 한다.

 

 

 

신격호 롯데월드타워

이후 신격호의 롯데는 계획을 변경해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한다. 국내에 처음 진출한 신격호 회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반도호텔 자리에 새로운 호텔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제안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신격호는 여기에 세계적인 호텔 건립 이상의 목표를 세웠다. 40층에 1000실 규모의 호텔에 백화점과 오피스타운까지 동시에 건설하는 전무후무한 복합개발을 구상했다.

 

1970년대 초에는 300~400실 규모면 일류 호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정도면 상상을 초월한 사업이었다. 끝내 서울 소동동에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이 지어진다.

 

신격호의 과감한 투자는 대한민국의 관광은 크게 발전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관광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초고층 롯데월드타워의 탄생도 신격호 명예회장의 대단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故신격호 명예회장 曰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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